
밤 10시에 넝쿨째 굴러온 수박 3통
내가 너무 극성스럽게 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..
나의 넘치는 이 힘을 어찌해야 할까도 싶고..
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..
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도 싶고...
내 살다 살다 수박 보며 이런 생각 해 본 것도 처음이다 싶다.
내가 밤 10시에 수박 3통 때문에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잠자기 전 팔이 아파서 양치질도 가글로 해야만 했던
미친 사연은 이랬다.

껍질이 얇다.
그래도 다행이다.먹을 수 있는 살이 많아서...

까만 씨가 별로 없는 걸로 봐서는 밭에서 익은 게 아니라 길에서 익은 거 같다.
그래도 맛은 꽤 괜찮았다. 과일가게 사장님께 고맙고 살짝 미안하다.

집에 일찍 들어오니 확실히 밤이 길다.
이리저리 뒹글어도 9시밖에 안 된 초저녁(?) 시간이라 운동을 하러 나갔다.
1시간여 빠른 걸음으로 땀을 흘려 걷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..
과일 차가 보였다.
마침 목도 마르고 해서 수박 한 통을 살까 고민했다.(나는 과일을 안 좋아해서 특히나 수박은 더 안 산다. 껍질처리 때문에 더...)
"수박 얼마에요?"
"떨이 하는 거니 3통에 만 원에 가져가세요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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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통에 만원이라니..
맛이야 아직 모르겠다만 이 정도 크기면 홈플러스에서 7,8천 원은 할 텐데...
떨이라며 다 가져갈 것을 은근히 바라시는 피곤한 사장님의 말에 맘이 흔들렸다.
3통이면 옆에 사는 늙은 처녀 귀신,2도 한 통 주고 나도 두고두고 먹으면 되지 않을까?
아냐? 그럼 수박껍질 처리는...
몇십 초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다른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수박에 눈독을 들인다.
마치 사갈 거 같은 줄줄 이어지는 질문..
이쯤 되면 나는 얼른 사야지 맞는 거다. 더 생각할 게 없다.
"주세요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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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고 가기 편하게 박스에 넣어주신단다.
"네..네...감사합니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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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확히 몇 kg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3통이면 20kg은 족히 될 듯..
지나가는 사람들 다 쳐다보고(쳐다만 보지 말고 좀 들어주지...)
서너 발자국 들고가다 쉬고 쉬고......
결국 지나가는 택시 없을까 두리번거려도 그 넘치게 지나가던 택시는 1시간여 동안 없었고..
집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인데 집에 와 보니 거의 1시간이 걸렸다.
1시간여, 내가 나한테 할 수 있는 오만가지 욕을 다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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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미쳤지....내가 미쳤어...
수박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눈깔이 멀어서 말이지..
땀을 비 오듯 흘리고 허리,팔,어깨,발목...안 아픈 곳이 없다.
내가 미쳤지..미쳤어...
수박 3통을 사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거 하나 더..
수박 3통이 내 냉장고에 다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거..
냉장고에 있던 거 꺼내고 정리해도 결국 한 통은 이렇게 밖에서 뒹글뒹글...
수박아,냉장고에 못 넣어줘서 미안해.



덧글
정말 다시는, 다시는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을 굳게 맹세 합니다.
저도 해먹어보고싶어도 수박이 비싸서;;;;
2014/07/01 21:46 # 답글
비공개 덧글입니다.
2014/07/04 06:33 #
비공개 답글입니다.수박쥬스...해주면 먹지요.ㅋ
이 포스팅 읽고 웃겨죽는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 어떻게 이렇게 웃기게 잘 쓰나요? 제겐 스트레스 해소용 이런 글이 참 달달하고 좋네요.
음... 수박으로 할 수 있는 거 생가해 봣어요,
1. 수박화채 만들어 노인장에 돌린다 --- 이런 걸 하려면 반드시 노인장 직원분께 사전연락을 취해 드려도 될지 문의해봐야 할듯...
2. 수박을 얼려도 되는 방법을 연구한다 --- 나중에 얼린 수박 꺼내 그 수박 저며 수박과자 될 수 있는지 상상해봣어요. ㅋ
3. 수박을 끓이는 방법을 강구해본다 ---- 이때 그냥 끓이면 좀 그러니 옥수수 알갱이랑 함께 끓여도 되는지 강구해본다 --- 새로운 신메뉴 개발가능성에 대한 드라미틱한 상상 가능
4. 수박을 꼭 디저트말고 에피타이저로 맹글 수 있는 뭔가 요리개발이 뭐 있을지 궁리해본다 -- 아주 참신
쓰다 보니 내가 더 웃기네요. 바쁠 때 이런 멘트도 날리고 진짜 스트레스 없어지는 데에 이런 댓글 참 좋네요
지금 양 팔에 파스가 덕지덕지...
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데 별로 없어요.
수박은 그냥 썰어서 먹는 걸로..
이러다 어느 날 문뜩 기발한 거 나오면 바로 보여 드릴게요.
수박 넣어놓으실 때 될 수 있으면 통째로 보관하세요^^;;; 잘라서 보관하면 금방 안먹으면 물러요..
다시는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을것을 굳게 맹세합니다.
아직,여전히 2통 반은 그대로..
냉장고 문 열면 심란해요. 다른 찬도 못 들어가고 자리만 떡차지 하고 있으니 말이죠.
찾아보니까 샐러드에도 넣어먹고 수박맥주도 있고 샤벳,푸딩,주스 얼려서 아이스바 만들기도 하네요 ㅋㅋㅋ
요즘은 잘 안그러지만 전 예전에 고추장-_-세일할때 (수박 세덩이에 비할바는 아니지만) 2키로짜리 두개 들고 마을버스 기다리면서 난 아직 젊은데(20대 시절) 내 나이 다른 애들은 화장품이나 옷 세일에 눈 반짝일텐데 왜 난 고추장에 이러는가..칼바람 맞으며 자괴감에 살짝 빠지기도 했었죠 ㅎㅎㅎ 자취하면 다 그런가봐요 ㅠㅠ
왜 수박을 공짜로 준다는데 싫다고 할까요?
4K를 들고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의 무게 잘 알아요.
자취녀, 이젠 폼 좀 잡고 살려고요.ㅋ
떨이라서 가격이 싼 거겠지만 수막은 무척 맛있어 보이네요. :)
저는 이제 수박을 돌같이 볼려고요.
4통에 만 원해도 어림없어요.ㅋ
25킬로를 들고 한시간을 끙끙거리신거에요....무게 배분도 안되는 박스로요.
수박한통, 우리 세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는 적지않은 양인데 어떻게 처리하셨을까 궁금하네요.
올여름 수박 더 안드셔도 될듯 ㅎ